Posted on 2024. 09. 04.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허리띠만 졸라매라니 민생은 어쩌라고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가계의 월평균 실질소득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인 0.8% 찔끔 증가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9일 발표한 ‘2024년 2/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을 보면, 올해 2분기 우리나라 1인 이상 전국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96만 1,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5% 증가했다. 가구소득은 근로소득·사업소득·재산소득·이전소득·비경상소득이 포함된 소득을 말한다.
문제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가계 실질소득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8% 증가하는 데 그쳐서 지난해 2분기부터 5분기째 감소하거나 제자리걸음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 가계 실질소득은 지난해 2분기에 3.9% 감소한 바 있다. 크게 줄어든 실질소득이 회복되지 못하고 정체하는 모양새다.
가계 실질소득은 지난해 3분기 0.2% 상승한 데 이어 지난해 4분기에도 0.5% 소폭 상승했으나 올해 1분기에 다시 1.6% 줄어든 바 있다. 5분기째 가계의 구매력이 정체하거나 줄어든 셈이다. 특히, 소득 상위 20% 가구의 명목 근로소득은 2분기에 8.3% 증가한 반면,에 하위 20% 가구는 7.5% 감소해 소득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만 졌다.
삼각(고물가ㆍ고환율ㆍ고금리) 파고가 장기화하고 경기둔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득이 늘지 않아 서민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고 한숨은 깊어질 수밖에 없으며 민생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회복하는 듯하던 경기도 지난달 소매판매가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성장 모멘텀(Momentum)’이 약화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30일 발표한 ‘2024년 7월 산업활동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 지표인 전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0.4% 감소했다.
지난 5월(-0.8%)과 6월(-0.1%)에 이어 석 달째 마이너스다. 3개월 연속 하락 세가 이어진 건 2022년 8~10월 이후 21개월 만이다. 우리 경제의 재화 판매 수준을 보여주는‘소매판매지수’도 지난달 100.6을 나타내며 전월과 비교해 1.9% 하락하면서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7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22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4%로 하향 조정하고 내년에는 2.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이 -0.2%를 기록하며 역성장을 했고, 3분기 들어서도 민간 소비 등 내수 지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황이 이런 때일수록 국가 재정의 역할이 중요할 터인데 정부는 ‘재정건전성 신화’에만 매몰된 채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국가채무(지방정부 채무 제외)와 가계 빚은 3,042조 1,000억 원을 기록, 처음으로 3,000조 원을 넘겼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 2,401조 원)의 약 1.27배 수준에 육박하고 올해 국가 예산 656조 6,000억 원의 4.63배를 넘는 규모의 금액을 국가와 가계가 빚으로 지고 있다.
이렇듯이 가계와 기업이 빚에 짓눌려 있는 상황에서 경제 3주체 중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곳은 그나마 정부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살리고 서민층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그런데 정부는 되레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초긴축 예산을 짜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형국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주로 소득·자산 상위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에 열중하고 있어 보인다. 말로는 재정건전성을 외치면서도 재정 기반을 외려 약화를 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올해 7월까지 국세는 예년보다 덜 걷혔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월 30일 발표한 ‘7월 국세수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세수입은 208조 8,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8조 8,000억 원(4.0%)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소비 및 수입 증가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부 증가가 주원인으로 작용했다지만 올해도 수십조 원대의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편, 정부가 지난 8월 27일 공개한 총지출 677조 4,000억 원 규모의 2025년도 예산안을 보면 총지출액은 올해보다 20조 8,000억 원 늘어난 것이며, 증가율로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올해 2.8%보다는 높은 3.2%이지만, 내년 경제성장률 예측치 4.5%보다도 낮은 고강도 ‘긴축재정’으로 평가된다.
또한 총수입 예산을 올해보다 6.5% 증가하는 데 그친 651조 8,000억 원 규모로 편성해 정부가 추구하는 건전 재정이 ‘덜 걷고 덜 쓰는’ 방식임을 재확인했지만, 정부가 현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으로만 건전 재정을 추구하는 건 문제가 있다.
꼭 필요하다면 그만큼 세수를 늘려 필요한 만큼 충당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방법도 있어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3년간 각종 세금 감면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스스로 재정 확충의 여지를 봉쇄해 버렸다. 물론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세금 덜 낼수록 좋겠지만 감세에 매몰(埋沒)돼 경기회복, 복지 확대, 미래 대비 투자 등 재정본연의 역할을 방기(放棄)하는 것은 ‘돈 풀기 포퓰리즘’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
정부는 불필요한 지출 24조 원을 줄여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재정준칙 한도(3%) 내인 2.9%로 맞추겠다고 했다. 3년 연속 건전 재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편성 방향은 맞지만, 관건은 세수 확보다. 현 정부 들어 세수 기반이 허약해지면서 지난해 56조 원에 달하는 세수가 펑크났다. 올해 상반기 정부의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도 76조 원 적자다.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3조 4,000억 원으로 통합재정수지보다 적자 폭이 더 크다. 우체국보험 적립금에서 2,500억 원을 차입하는 등 민간 재원을 끌어다 쓸 정도로 재정 여력이 고갈됐다. 문제는 재정은 결단코 화수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출을 늘리면 좋겠지만, 실탄이 너무도 빈약하다. 내년 지출 증가분 대부분은 의무 지출로 채워진 것도 문제다. 의무 지출은 365조 6,000억 원으로 5.2% 늘지만, 재량 지출은 311조 8,000억 원으로 0.8% 증가하는데 그쳤다.
정부는 내년 예산 편성의 중심에 민생을 두고 ▷약자 복지, ▷경제활력, ▷체질 개선, ▷안전사회·중추외교’를 4대 키워드로 제시했다. 약자 복지는 수출 회복의 온기가 좀처럼 내수로 퍼지지 않으면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것으로, 당연히 정부가 챙겨야만 한다.
기초생활 보장 급여액 인상, 노인 일자리 확충, 기초연금 상향, 공공주택 공급 확대 등이 주요 골자다. 저출생 대응책인 육아휴직급여 인상, 필수·지역의료 강화, 병장 월급 증액 등도 큰 범주의 민생지원책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재정이 살필 민생의 범주는 커져만 가고 있는데 세수 전망은 밝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내년 성장률은 2.1%로 올해 성장률 전망치 2.4%보다 0.3%포인트 하향 조정해 내년에도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3대 세수가 더 쪼그라들 수 있다.
지금은 ‘감세는 보수, 증세는 진보’와 같은 고루하고 비루하고 진부한 진영논리를 고집할 때가 아니다. 본예산이 안 된다면, 필요한 재정 역할을 위해 ‘부자 감세’ 축소나 증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재정건전성 제고는 포기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규제 혁파, 부처 간 협업 등을 통한 세수 확보에 더욱 고삐를 좨야 할 때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예산 국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짧은 회기 내내 샅바싸움만 하다가 막판에 몰려 밀실에서 전광석화처럼 여야의 예산 주고받기로 끝나는 관행은 이제는 식상하다 못해 실망스럽고 개탄스럽다. 여야가 민생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예산 국회가 협치의 계기가 되고 실상이 되어야 한다.
계획을 문자로 표시하면 기획이 되고 숫자로 표시하면 예산이 된다. 따라서 예산은 돈으로 계량한 정책이다. 결국 국회가 나서야만 한다. 건전재정·경기부양·약자복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만 한다. 9월부터 시작되는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가 확실한 견제 역할에 적극 나서되 틀에 갇힌 정치적 신념 및 관념에서 벗어나 돈 적게 들고 성과는 큰 정책과 서민 취약층의 눈물을 닦아주는 민생예산을 찾아내고 도출하는 합리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어 국민의 기대와 여망에 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