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4. 11. 20.
사회적 비용 100조 넘게 드는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 서둘러 개혁을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추세에 따라 ‘정년 연장’과 정년 이후 ‘계속 고용’ 등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연공급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세대별로 100조 원이 넘는 규모의 사회적 비용 부담을 초래할 것이란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지 25년 만인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확실시되면서 ‘연공급제(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제도)’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일본의 35년보다도 무려 10년이나 더 빠르다.
지난 10월 3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한 임금체계별 사회적 비용 연구(남재량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철인 │ 서울대학교 교수)’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 경제는 급속한 출산율 하락과 고령화로 1970∼1980년대의 한국 경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경제 및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나 한국 노동시장을 둘러싼 법과 제도 및 관행 등의 변화는 매우 더디다고 전제하며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강한 임금 연공성으로 인해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은 1년 미만 신임 근로자의 4.4배에 달하고, 근속 20년 이상 30년 미만 근속 근로자의 임금은 1년 미만 신입 근로자 대비 2.83배로 독일의 1.88배, 프랑스의 1.34배, 영국의 1.49배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호봉제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일본보다도 무려 2.54배나 높다.
또한, 근속 15∼19년의 임금도 1년 미만의 3.3배로 격차가 극심해 한국의 임금 연공성은 유럽, 일본 등 비교가 가능한 대부분 국가보다 훨씬 높다.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한 임금체계별 사회적 비용 연구’ 보고서는 이러한 임금 연공성이 과거에는 정년제와 더불어 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기업의 인적자본 축적에 도움으로 작동하면서 양측에 모두 이득으로 기능했으나, 시대가 바뀐 오늘날에는 유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호봉제와 같은 장기임금계약은 청년 세대의 생산성 일부를 장년 세대 근로자에게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란 전제로 현재 청년 세대가 장년이 됐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생산성 일부를 미래 세대에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충족돼야 하지만, 인구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이 급격히 저하하는 상황에서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이런 기대가 이미 사라졌고, 이에 따라 극심하게 높은 이직률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이런 장기임금계약을 지속한다면 사실상 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제도 개선을 하지 않는 경우 발생하는 비용을 수리적 모형을 이용해 환산할 시 개별 세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7%의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특히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23년 기준 실질 GDP가 2,243조 원이라 전제하면 7%는 157조 원에 이르고, 여기서 자본 부분을 제외한 노동 부분은 70% 정도로 약 110조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은 장기임금계약 구조가 정상적일 때를 가정한 것이라며, 만약 연공급 구조 때문에 저생산성 근로자가 현재 생산성을 초과한 임금을 받는다면 고생산성 근로자가 이직하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게 돼 사회적 후생비용은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보고서는 “임금피크제와 조기 퇴직은 경직적인 임금제도로 인해 나타난 기형적인 제도와 양상”이라며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를 시대의 변화에 맞도록 개혁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고령화,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정년 기준을 올리거나 폐지하는 추세다. 미국은 1986년, 영국은 2011년 정년제를 폐지했다. 근로자 정년을 법으로 명시해 유지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일본 등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덴마크, 폴란드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의무적인 개념의 정년은 없고 정년퇴직을 정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국가도 있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사실상 정년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정년을 독일은 67세로, 프랑스는 64세로 차츰차츰 올리는 추세다. 아시아의 대만, 싱가포르 등도 정년 시기를 폐지하거나 연장하고 있다. 일본도 1994년 60세 정년 의무화를 입법하고, 1998년 시행에 들어갔다.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로 한국과 같지만, 일본은 근로자가 원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체계다. 일본은 억지로 법정 정년을 연장하지 않고 기업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고용 연장’ 개념의 접근이다. 일본에서는 기업이 ‘65세까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 고용’ 셋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세 가지 선택지 중 기업 대부분은 ‘계속 고용’을 선택하고 있다. 2020년 일본은 관련법을 한 번 더 개정하고 기업이 70세 고령자까지 ‘취업’ 기회를 마련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명시했다. ‘65세 고용 의무화’가 12~13년 가량 소요된 점을 감안해 보면 70세 정년은 2030년 중반에나 정착될 것이라 여겨진다. 아직 70세 정년이 완전 의무화된 것이 아닌데도 일본 기업들은 이미 고용을 70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저출생과 고령화 추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청년은 줄어들고 노인 인구는 늘어나는 와중에 정년 60세 이후에도 일해야 할 경제적 필요성이 급격히 커졌고 충분히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 나이도 젊어졌다.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은 까닭이 아닐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세대별로 100조 원이 넘는 규모의 사회적 비용 부담을 초래할 것이란 현행 ‘연공급제’를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는 직무급제나 성과급제 등으로 서둘러서 바꾸지 않는 한 정년 연장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임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의 경직적인 임금체계는 이미 기형적 제도인 임금피크제나 40, 50대 조기 퇴직을 서둘러 초래한 사실만 봐도 익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노동시장의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성의 근본 원인으로 각인된 ‘연공급제’를 이대로 방관(傍觀)만 하고, 방치(放置)하고 방기(放棄)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모두 돌아갈 것이라는 문제점을 각별 명심하고 서둘러 개혁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