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5. 03. 26.
국가 총부채 6,222조 원에 달해,
재정 건전성 지킬 새로운 세원 발굴해야
한국의 경제 주체들의 빚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3분기(7~9월) 말 기업과 가계, 정부 부채를 모두 합한 ‘국가 총부채’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6,222조 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나 위험수위를 넘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2,549조 1,000억 원의 2.44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금융 정책 완화를 통한 소비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 부채는 지난해 3분기(7~9월) 말 1,141조 원으로 2023년 3분기 말(1,020조 원) 대비 약 120조 원(11.8%) 급증하면서 경기 악화에 따른 세수 부족의 영향이 크다는 진단과 함께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 규모가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 경제에 악재”라고 평가했다.
지난 3월 20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3분기(7~9월) 말 원화 기준 ‘비금융부문 신용’은 6,222조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약 250조 원(4.1%) 증가했다. 전분기보다는 약 55조 원(0.9%) 증가한 규모다. ‘비금융부문 신용’은 국가 간의 비교를 위해 자금순환 통계를 바탕으로 주요 경제 주체인 가계와 기업, 정부의 부채를 합산한 금액으로 통상 국가 총부채로 불린다.
이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기업 부채 2,798조 원, 가계부채 2,283조 원, 정부 부채 1,141조 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이 장기 둔화하고 있고 정부와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하고 있어 이러한 ‘빚 폭탄’을 이대로 방치(放置)하거나 방기(放棄)했다간 얼마 못 가 터져버릴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이자 뇌관이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견뎌야 할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정부와 기업들은 비상한 각오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빚이 빚을 낳고 저성장이 지속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총부채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크게 늘었다. 2021년 1분기 말 처음 5,000조 원을 넘어섰고, 오름세가 계속돼 2년여만인 2023년 4분기 말 6,000조 원을 돌파했다. 다만 지난해 3분기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247.2%)은 2023년 2분기 말(252.9%) 정점을 기록한 뒤 5분기 연속 하락했다. 특히 정부 부채가 급증한 것이 ‘국가 총부채’ 급증을 견인했다.
정부 부채가 1년 새 약 120조 원(11.8%) 급증할 때 같은 기간 기업부채는 약 80조 원(2.9%), 가계부채는 약 46조 원(2.1%) 각각 늘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22년 4분기 말 41.5%에서 2023년 1분기 말 44.1%로 크게 뛰었고, 지난해 1분기와 2분기 말 각 45.4%, 3분기 말 45.3%로 크게 뛰었다.
국가 총부채(6,222조 원 │ 100%) 중 기업부채(2,798조 원 │ 44.9%)와 가계부채(2,283조 원 │ 36.7%)가 약 5,081조 원으로 전체의 81.6%를 차지하는데 최근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우선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약 15%를 차지하며 일자리 창출 효과와 후방 산업 파급 효과가 커 바닥 경기의 잣대로 불리던 건설업이 크게 휘청이고 있다.
미분양 증가와 경영악화로 인해 전체 건설사의 절반은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한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지속한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 경색, 지방 주택 경기침체 등 건설업을 옥죄는 각종 악재가 해소되지 못한 탓이다. 실제로 중견 건설사들이 지난해 공사를 진행하고도 받지 못한 공사비는 12조 원에 육박해 2년 전과 비교해 40% 가까이 급증했다.
게다가 소비심리 위축에 자영업 파산은 역대 최고치로 증가했다. 550만 자영업자들은 매출 반 토막, 임차료 체납, 대출 연체에 시달리며 벼랑 끝에 생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두 달 사이 20만 명의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이 폭삭 무너지고 있다. 기업과 가계가 빚을 감당하지 못하면 금융권으로 부실이 전이된다. 경기침체와는 차원이 다른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저축은행, 카드사 등의 대출 연체율이 급증해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잔액 중 36.9%가 연 6% 이상 고금리 대출이다. 연 5% 이상으로 확대하면 전체의 71.7%에 달한다. 연 4.68%인 은행 대출 평균 금리보다 훨씬 높다. 저축은행이나 보험업체, 대부업체 등의 대출 금리는 연 10%를 훌쩍 넘는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상호금융기관 등 취약 부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이 투자와 성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빚을 줄일 수 있도록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정부 부문 부채 급증에 대해서는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선제 대응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아직 40%대로 주요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증가율을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지난 1년 새 무려 11.8%나 늘었기 때문이다.
국가 총부채 규모가 하향추세라곤 하지만 절대 금액이 줄지 않는 점은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신호임에는 분명하다. 국민 10명 중 8명이 가계경제가 악화하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기업 역시 신규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유일하게 부채가 급증한 정부 부문 역시 임시처방 땜질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돈을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총부채 비율이 줄었다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다소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3분기 말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47.2%로 전 세계 8위권에 있는 ‘만성 빚더미 국가’라는 오명은 가시지 않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제대로 돈이 쓰이도록 철저한 관리를 소홀히 해선 결단코 안 될 것이다.
정부 부채가 급증한 건 세수가 부족했거나 세수 이상으로 썼다는 얘기다. 현 정부 들어서 건전 재정 기조하에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수 확보 방안은 강구하지 않으면서 감세 정책만을 시행해 나라 살림이 적자로 이어지고, 모자라는 돈은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충당해왔다. 정부 부채가 늘면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국채 이자가 늘어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것은 재정의 기본철칙이다. 그만큼 복지나 경기 부양에 쓸 여력이 줄어들게 돼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내핍(耐乏)과 고통 분담 없이 정부 부채를 줄일 수 있는 비법은 없다. 선심성 인프라 사업 재검토를 비롯해 지출 축소 방안을 짜내는데 고민을 담고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정치권의 감세 요구에 대응해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면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극심한 내수 부진의 장기화가 고착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발(發) ‘관세 폭탄’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의 무거운 재정 위기 암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현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인한 세원 감소로 재정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서민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2023년 56조 4,000억 원에 이어 2024년에도 30조 8,000억 원이 예산보다 덜 걷히는 대규모 ‘세수 펑크’가 2년째 이어지며 지난 2년간 무려 87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이 발생한 가운데 올해도 내수 부진에 대외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세입 여건 악화로 3년 연속 ‘세수 펑크’가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올해도 세수 여건이 녹록지 않다.
가뜩이나 내수가 어려운 데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으로 국제 통상 환경이 매우 불안정하기 이를 데가 없다. 지난 2년처럼 올해도 기업이 내는 법인세 등이 예상보다 감소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런데도 여(與)·야(野) 정치권은 법인세와 소득세, 상속세, 부동산세 등 거의 모든 세목에서 치열한 감세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내수 활성화를 통한 자영업자 지원 등은 불가피한 책무이지만 정부 빚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세수를 확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