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5. 04. 09.
역대 최악의 기상이변
모든 기록 다 갈아치운 기후재앙 경고 철저 대비를
지난해 한반도 대지는 뜨겁게 달궈졌고 바다는 들끓었으며 하늘에선 물 폭탄·눈 폭탄이 쏟아져 전대미문의 역대 최악의 기상이변을 낳았다.
기상청이 지난 4월 1일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발간한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지난해에 우리나라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여름철 폭염(暴炎)에 이어 강수, 대설 등 각종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고 지난해를 “기후위기를 실감했던 한 해”로 매김했다.
각종 이상기후 관련 기록을 갈아치우며 시민 일상을 위협한 ‘최악’의 한 해였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인 정부를 향해 구조적 기후재난을 경고한 기후 당국의 보고서라 할 만하다.
이번 발간된 기상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연평균기온은 평년(12.5℃)보다 2.0℃도 상승한 14.5℃로 기상관측 기록 기준점이 되는 1973년 이래 가장 더웠으며, 9월까지 이어진 폭염, 열대야 외에도 장마철에 집중된 강수, 11월 대설 등 다양한 이상기후 현상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피해가 발생하였다. 무엇보다 지난해는 연중 내내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했다.
폭염일수는 무려 24일로 평년(10.6일)과 비교해 2.3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열대야 일수도 20.2일로 역대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제주 지역에서는 열대야가 최대 47일까지 지속했다. 특히 여름철 평균기온은 25.6℃로 역대 최고였다. 지난해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한 날은 최고기온 기준으로 76.7일, 최저기온 기준으로 103.6일이었다.
더위는 늦가을까지 이어져 9월 평균기온이 24.7℃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였고, 평년 0.2일에 불과하던 9월 폭염일수는 6.0일로 폭증했다. 이상고온 발생일은 일 최고기온과 일 최저기온이 상위 10%에 들어 평년(1991~2020년)과 비교해 기온이 현저히 높은 날을 말하는데 9월에 만도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한 날은 최고기온 기준으로 16.9일, 최저기온 기준 19.7일이었다.
뜨거워진 것은 지상뿐만이 아니었다. 바다도 마찬가지로 뜨거워져 국내 해역 해수면 온도는 17.8℃로 최근 10년 사이 최고였다. 2024년 한반도 주변 해역 이상고수온 발생 일수는 182.1일로 최근 10년(50.4일) 대비 3.6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무더위가 길어진 9월의 경우 27.3일로 최근 10년 대비 6.6배로 늘었다. 이상기후는 더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시기에 맞지 않는 눈·비가 동반됐다.
지난해 2월 전국 강수량은 102.6㎜로 역대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겨울비가 내렸다. 강수일수도 13.2일로 평년보다 7.1일가량 많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특정 기간 비가 쏟아지는 집중호우 강도가 전보다 높아지면서 장마철(6월 19일 ~ 7월 27일)에만 비가 무려 474.8㎜ 내렸다.
장마철 기준 역대 11번째 강수량으로 여름철 강수의 78.8%가 장마철에 집중됐다. 계절에 맞지 않게 겨울철에도 호우특보가 발효되는 지역도 있었다. 가을철에 접어드는 9월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9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241㎜로 평년(155.1㎜) 대비 154.6%가량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9월 20~21일에는 남해안을 중심으로 누적 강수량이 300㎜ 이상을 기록한 곳도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높은 해수면 온도와 낮은 대기 온도 간 차이로 발생한 폭설이 중부지방을 강타했다. 서울과 인천, 경기 수원 등은 11월 적설 최고 기록을 세웠다. 서울, 인천, 수원 등 수도권에서는 11월 기준 하루에 가장 많은 눈이 쌓이기도 했다. 연중 더운 날씨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수증기가 풍부한 눈구름이 발달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직접적인 피해를 동반한 태풍도 다수 발생했다.
2024년 가을철에는 총 15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이는 평년(10.7개)과 비교해 4.1개 많은 수치다. 반면 여름에 발생한 태풍은 8개로 평년(11개)에 비해 적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은 그중 2개에 그쳤다. 문제는 이상기후에 따른 피해 또한 각종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특히 날씨와 직결된 농업 부문의 피해가 컸다. 대설·한파, 일조량 부족, 우박, 집중호우, 이상고온 등 농업재해가 지속해서 반복됐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건강 악화 사례도 늘었다. 지난해 여름철 최악 무더위에 온열질환자는 전년 대비 무려 31.4% 급증한 3,704명에 달했고, 사망자도 34명에 달했다. 태풍·호우에 의한 인명피해는 총 6명, 재산피해는 총 3,893억 원이 발생했다. 대설에 의한 인명피해는 잠정 6명, 재산피해도 4,556억 원으로 집계됐다.
기후재난은 밭일하던 노년층, 택배 배달노동자, 쪽방촌·반지하 거주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부터 희생시켰고, 물가를 들썩이게 했다. 역대 가장 피해가 컸던 지난달 영남 지역 산불 때도 희생된 이들의 다수는 거동이 느리고 불편한 노인들이었다. 피해는 농업과 어업으로도 이어졌다.
농업은 1~2월 대설·한파, 5월 우박, 여름철 고온과 폭우, 11월 대설 등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1년 내내 큰 피해를 봤다. 지난해 9월 폭염과 고온 현상으로 인해 인삼 등 농작물 재배면적 3,477㏊의 피해가 발생했다. 7월에 발생한 호우로 9,447㏊의 농작물 피해, 891㏊의 농경지 유실·매몰, 102만 마리의 가축 피해가 발생했다.
어업도 해수면 온도 상승에 따른 양식장 어류 폐사 등 부작용으로 이어지면서 2022년 17억 원이었던 피해액 규모가 2023년 438억 원으로 늘더니 2024년도에는 무려 3배가 넘는 1,439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인천, 경기, 전북을 제외한 대부분 해역에서 여름철 고수온에 의해 양식 생물의 대량 폐사 피해가 발생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지난해 연평균기온 역대 1위 경신, 기록적인 열대야, 장마철에 집중된 호우, 11월 대설 등 역대급 최악의 기후재앙을 경험했다. 지난해 전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5℃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3월 19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4 세계 기후 현황’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 지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90년 평균값) 대비 1.55±0.13℃ 상승했다. 이는 지난 175년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다. WMO는 “2015~2024년은 기록적으로 가장 따뜻한 10년이었고, 전 지구 지표면 온도는 2024년 기록을 경신했다”라고 발표했다.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지표도 일제히 정점을 찍었다.
대기 중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는 지난 80만 년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바닷속 열에너지 총량을 뜻하는 해양 열 함량은 65년 관측 기록상 가장 높았으며 지난 20년 동안의 해양 온난화 속도는 과거(1960~2005년) 대비 2배 이상을 빨라졌다.
이렇게 바다가 달궈지면서 해빙(바다 얼음)이 줄고 해수면은 빠르게 상승했다. 지난해 전 지구 평균 해수면 고도는 위성 관측(1993년) 이후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10년간 해수면은 연간 4.7㎜ 속도로 상승했는데, 이는 1993~2002년의 속도(2.1㎜/yr)의 두 배 수준이다. 북극 해빙 면적은 과거 18년 기록 중 가장 작았고, 남극 해빙 면적 역시 1979년 관측 이래 각각 2번째로 줄어들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2023년 7월 2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하며 “지구온난화 시대(The era of global warming)는 끝났다. 지구가 끓는 시대(The era of global boiling)가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끓는 시대’ 진단은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가 이날 “지금 추세라면 그해 7월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달이 될 것”이란 관측 결과를 내놓은 직후 나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현재 기후변화는 공포스러운 상황이지만 시작에 불과하다.”라며 “모든 국가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 산하 공동연구센터(EDGAR)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520억t에 달한다. 국가별로는 중국(29%), 미국(12%), 인도(8%) 순이고, 우리나라는 13위(1.3%)를 차지했다. 또 국제연구기관(Global Carbon Atlas)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63억t에 달하며 우리나라는 10위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탄소 저감 정책 책임에서 결단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유엔은 이번 WMO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지구온난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장기 지구 온도 수준을 1.5℃ 이하로 제한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다”라며 “올해 예정된 ‘2035 국가기후계획’을 통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후재앙을 해결할 근본 대책은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것 외에는 별다른 비급(祕笈)은 없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의 인식과 정책변화가 급선무다. 속도를 내도 시원찮을 판에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거나 미루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는 근시안적 정책으론 해마다 심해지는 기후재난을 막을 수 없다.
탄소 저감 정책은 일부 국가의 무역장벽 대응책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기후위기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탄소중립 정책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당장의 경제 성과에만 급급해 임박한 미래 위험은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태도로는 실효성은 아예 전무(全無)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3년 4월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산업부문에서 탄소 배출량을 2억 3,070만t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온실가스 저감 기술 개발, 재생·청정에너지, 수소 등 비화석 에너지 확대,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활용 등을 통한 산업부문의 탄소 감축 방안을 포함했다. 중요한 것은 강력한 실천 의지를 갖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차제에 정부·기업·국민은 모든 기록 다 갈아치운 기후재앙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철저 대비를 위한 실천 의지를 다지고, 정부는 규제 혁신과 재정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은 지속 가능한 ESG 경영을 실행하며, 국민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을 통해 탄소 저감에 전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유효한 첩경이나 지름길은 없음을 각별 유념하고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탄소 감축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또 기후재난에 가장 심각하게 위협받는 취약계층 보호 대책부터 촘촘히 세워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