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5. 05. 14.


KDI \'잠재성장률 제로\' 경고, 퍼주기 멈추고 구조 개혁 나서야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이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평균 1.5%에 그치며, 15년 뒤에는 0% 안팎으로 추락한다는 암울한 전망과 함께 2047년쯤 마이너스(-)로 전환해 역(逆)성장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8일 밝힌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물가 자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성장률)이 올해 1%대 후반으로 추정되며 2030년대 1% 초반, 2040년대 0% 내외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생산성 둔화에도 구조 개혁이 지연될 경우 2041~2050년의 잠재성장률은 -0.3%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KDI는 3년 전엔 성장률이 0%가 되는 시점을 2050년으로 예상했는데 10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 5% 안팎이었지만 20년 만에 2%로 반 토막이 난 데 이어, 계속 떨어져 15년 뒤엔 0%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19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제하의 보고서에서 밝힌 전망치(2045년 0.6%)와 비교하면 훨씬 더 비관적인 전망이다. 저출산·고령화 속에 생산성 저하가 심화하면 2040년대 후반 경제가 쪼그라드는 역성장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한다.

KDI는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구구조 변화를 지목하며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올해 69.5%에서 2050년에는 51.9%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동원할 수 있는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KDI의 이번 보고서는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 원인에 대해 “우리 경제의 혁신 부족, 자원 배분 비효율성 등으로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가 낮아지는 가운데,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성숙기 진입에 따른 투자 둔화 등으로 노동·자본 투입 기여도까지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요소생산성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기술 수준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통 자본·노동 투입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가가치의 증가분으로 측정한다. 생산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크게 낮아졌으며, 최근엔 노동력 투입 둔화까지 가세해 성장률 하락 폭을 키우고 있다.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1.9%에서 2011~2019년 0.8%로 낮아졌다. 또 생산연령인구(15~64살)가 2019년을 정점으로 빠르게 감소함에 따라 노동 투입의 성장률 기여도는 2030년께 마이너스(-)로 전환될 것으로 추정하며, 새 기술 습득이 어려운 고령 인구(65살 이상) 증가는 노동 투입 축소는 물론이고 생산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잠재성장률 하락이 가파른 점이 우려를 더 크게 한다. 1990년대 평균 8%이던 잠재성장률은 2008년 4.0%, 2024년 2.1%로 급락했다.

특히 이런 추세가 개선 없이 이어지면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기준 2025∼2029년 1.8%, 2030∼2034년 1.3%, 2035∼2039년 1.1%, 2040∼2044년 0.7%, 2045∼2049년 0.6%까지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어두운 전망과 실망스러운 우려들은 모두 현 추세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구조 개혁에 성공한다면 성장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의 얘기일 수도 있다. 잠재성장률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대선 과정에서 각 후보가 관련 공약을 내걸어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고 집권 이후 개혁에 속도를 높여야만 할 것이다.

물론 성장률은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둔화하기 마련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의 경제 규모에 비교해 너무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외려 조금씩 상승하며 작년과 재작년 모두 2.1%를 기록하며 우리나라를 역전했다. 독일, 영국 등도 조금씩 반등하는 추세다.

주요국에 비교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건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이 가장 크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인구는 줄고 복지지출은 늘어 정부 세수 기반이 약화하는 탓이다. 기술 혁신과 성장산업 발굴 등에서 점점 뒤처지는 것도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주된 요인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는 2019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70%대 초반을 유지하던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올해 70%를 하회한 후, 2050년에는 51.9%까지 하락한다. 2050년 한국의 생산연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 수준에 머무른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업체인 ‘맥킨지 앤드 컴퍼니(McKinsey & Company)’는 지난 1월 24일 ‘트럼프 2기 주요 정책과 한국의 잠재적 영향력’ 제하의 보고서를 통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한국의 15대 주요 수출 품목 중 9개(반도체, 석유 제품,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제품, 자동차 부품,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가전제품)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해당 품목들은 한국 전체 수출액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어 국내 경제 전반에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보고서는 지난 20년간 변화하지 않은 한국의 수출 구조가 이러한 위기를 가속화(加速化)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수출 품목의 다각화와 신기술 확보에 실패로 인해 한국 경제가 이번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대선 후보들의 현금 지원 공약은 재정 건전성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퍼주기식 포퓰리즘을 멈추고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특히 규제 사슬 혁파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노동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구조 개혁과 초격차 기술 개발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관건은 출산율 제고와 생산성 향상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수도권 집중 완화, 일·가정 양립, 돌봄 부담 경감을 위한 사회서비스 확충 등이 긴요하다. 생산성 제고에는 인공지능(AI) 활용, 혁신 생태계 조성 등이 필요하다.

출산율이 점진적으로 회복되더라도 해당 인구의 노동시장 진입은 2050년 이후에나 될 것이므로 그때까지는 고용 연장과 외국인 인력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결국은 저출산 대책은 물론 산업구조 재편, 노동 개혁, 세제 개편, 규제 혁파 등을 아우르는 전면적 개조가 필요하다.

KDI는 성장률 0% 추락을 막기 위해선 혁신 기업이 새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규제 개혁을 통해 경쟁을 더 촉진하며, 임금 체계 개편과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해 생산성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거론돼 온 낯익은 처방들이자 기시감(旣視感)이 앞서는 대책들이다. 하지만 기득권 이익집단의 저항과 표만 보고 기득권에 영합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Populism)’에 발목 잡혀 왔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25일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0.4%포인트 낮추면서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모두 1%대에 그쳐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이냐”는 질문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그게 현재 우리의 실력”이라고 했다.

그는 “그간 구조조정도 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우지 않은 채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에 1%대 성장률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했다.

‘성장률 0% 사회’가 어떻다는 것은 무엇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반면교사(反面敎師) 해보면 알 수 있다. 비결은 법, 제도, 노사관계, 기술·경영 혁신을 통한 총요소생산성 제고에 달려 있다. 대선 후보들은 미래세대에 지속 가능한 경제를 물려주기 위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경제 체질을 획기적으로 확 바꾸는 혁신 성장전략을 고민하고 국가경영에 반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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